
경매 절차에서 잔금을 납부하면 어느 정도 마무리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때부터 새로운 과제가 시작됩니다. 점유자와의 대화, 인도 문제, 부당이득금 정산처럼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풀어야 할 숙제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날도 그런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집에서 3시간 넘게 차를 몰아 점유자의 거주지로 향했습니다. “그래도 서로 대화를 나누면 방향이 잡히겠지.”
그런 기대를 품고 출발했던 날이었습니다.
1. 문이 열리고, 예상과 다른 첫 반응
집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고, 잠시 후 부인이 문을 살짝 열었습니다. 저는 최대한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경매에서 이 집을 낙찰받은 사람입니다.
잔금까지 납부한 만큼, 앞으로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왔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첫마디는 예상과 전혀 달랐습니다.
“왜 받았어요?”
순간 당황스러운 정적이 흘렀습니다. 경매는 공개된 절차고, 누군가는 낙찰을 받아야만 일이 진행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질문에는 낙찰자에 대한 원망과 불편한 감정이 그대로 묻어 있었습니다.
저는 담담하게 답했습니다.
“경매가 진행되었고, 절차에 따라 낙찰을 받았습니다.”
2. “마음대로 하세요”라는 말 한마디
제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인은 짧게 말했습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리고는 등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더 이야기를 나눌 기회조차 주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왕복 6시간 거리, 편도 3시간 넘게 차를 몰고 와서 얻은 대답이 고작 10초 남짓한 거절이라니, 허탈함이 밀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3. 돌아오는 길, 이해되지 않던 반응의 이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왜 그런 반응이 나왔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관계와 지분 구조를 하나둘 듣게 되었고, 그제야 그날의 차가운 태도가 어느 정도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집은 아버지가 사망한 뒤 상속으로 지분이 나누어진 상태였습니다. 어머니는 3/17 지분을 가지고 있었고, 부인과 자녀들, 형과 동생이 각각 2/17씩 지분을 가진 구조였습니다.
문제는 동생 쪽에 있었습니다. 이 동생이 여러 문제를 일으켜 과거에 자신의 지분 2/17이 경매로 넘어간 적이 있었고, 그때는 형이 그 지분을 매매로 사들여 어렵게 정리했다고 합니다. 가족 입장에서는 이미 한 번 큰 부담을 짊어진 기억이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니 이번에 어머니 지분 3/17이 다시 경매에 나왔을 때, 가족들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굳어졌을 수 있습니다.
“지난번엔 우리가 대신 해결했지만, 이번에는 절대 못 한다.”
“또 경매라고? 이번엔 절대 내보내지 않는다.”
저는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른 채, “지난번처럼 형이 이번에도 조율해주겠지”라는 안일한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근거 없는 낙관이었고, 이미 가족 내부에서는 감정이 단단히 굳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감정이 결국 “왜 받았어요”, “마음대로 하세요”라는 말로 드러난 것입니다.
4. 사전조사가 부족하면, 현장에서 대가를 치른다
무엇보다 이 복잡한 사정을 사전 조사 단계에서 파악했어야 했습니다.
지분 경매에서는 단순히 등기부와 매각물건명세서만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유자의 정확한 신분과 가족관계
- 상속 지분 구조와 이해관계
- 과거에 경매가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 그때 누가 부담을 졌는지, 갈등은 어떻게 정리됐는지
이런 정보들은 모두 사전조사에서 확인했어야 할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경매 초보자였고, “대화하면 어떻게든 풀리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접근했습니다. 그 결과, 현장에서는 대화가 시작도 되지 않은 채 쳐내는 듯한 한마디만 듣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번 사례는 ‘사전조사 미흡 → 현장 난관’의 전형적인 구조였습니다. 경매는 건물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깊이 느끼게 해 준 사건이었습니다.
5. “왜 받았어요”라는 말이 남긴 것
그날 문 앞에서 들었던 한마디, “왜 받았어요.”
이 말에는 원망과 억울함, 피로감, 포기, 그리고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 싶은 마음까지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경매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반감, 가족 내부에서 쌓인 피로감이 낙찰자에게 그대로 쏟아진 것이기도 합니다.
낙찰자 입장에서는 절차에 따라 입찰을 했을 뿐이지만, 점유자 가족 입장에서는 “또 우리 집을 흔드는 사건”으로 보이는 것이지요. 이 간극을 이해하지 못하면, 현장에서의 감정 소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6. 다음 편 — 대화가 막힌 뒤, 결국 소송으로
대화가 완전히 막힌 이상, 남은 길은 법적 절차뿐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 부당이득금 소송을 준비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해 내용증명 발송, 부당이득금 계산, 소송 준비 과정에서 실제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초보자의 관점에서 느꼈던 어려움과 배운 점을 이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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